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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수>는 한국 정치 깡패의 대표적인 인물로 야인시대와 무풍지대 등의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실존 인물인데요, 그를 둘러싼 주요 사실을 핵심만 간추려 BEST 5로 정리했으니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임화수 공판 사진(출처 : KTV)
임화수 공판 사진(출처 : KTV)

 

1. 드라마 속 임화수에 대해

 

 

① <임화수>를 검색해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은 거의 대부분 드라마 「야인시대」를 통해 그를 처음 접하셨을 것입니다.

 

「야인시대」는 2002년 7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총 124회를 방영하며, 평균 시청률 약 30%를 기록했던 기념비적인 드라마입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 종로를 주름잡았던 두목 <김두한>이 주인공이며, <이정재>, <시라소니>, <유지광> 등의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해 시청자들은 그 시대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역사극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드라마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당시 고3 수험생 중에는 6월 막을 내린 <2002 한·일 월드컵> 폐막 직후 방영을 시작한 「야인시대」 덕분에 재수를 결심한 학생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처럼 배우 최준용 씨가 연기한 임화수 역시 이 드라마에서 상당히 임팩트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영화를 사랑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실세 <곽영주>를 등에 업고, 그의 심복이자 비서인 <눈물의 곡절>과 배우들을 못 살게 굴며 자신의 야욕을 실현하다 결국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야인시대 속 임화수와 눈물의 곡절 모습 사진
야인시대 속 임화수와 눈물의 곡절 모습

 

② 그런데 중장년층 분들께서는 야인시대가 아니라, 1989년에 방영한  「무풍지대」를 통해 그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무풍지대」는 야인시대보다 약 13년 전인 1989년 6월부터 9월까지 22회로 제작되었으며, 당시 조사가 정확히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총 124회로 제작된 야인시대와는 22부작 형태로 제작된 미니시리즈였으며, 김두한이 아닌 유지광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드라마의 대사와 인물별 캐릭터는 야인시대 2부에서 대부분 차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배우 연규진이 연기한 <임화수>와, 김성찬이 연기한 <눈물의 곡절> 캐릭터는 야인시대에서 배우 최준용과 손헌수가 거의 똑같이 계승합니다.

 

 

사진
무풍지대 속 임화수(왼쪽/연규진 역)와 눈물의 곡절(오른쪽/김성찬 역)

 

2. 임화수와 곽영주 실제 나이

 

이번에는 그의 생애와 주요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살펴볼 부분은 당시 이승만 정권의 핵심 실세이자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장급인 <곽영주>와의 관계입니다. 당시 재집권을 노리던 이승만 정권에서는 이기붕을 통해 이정재가 두목으로 있는 <동대문상인연합회>와 접촉하게 됩니다. 이때 동대문 사단의 2인자였던 임화수는 곽영주와 술자리를 가지게 되는 데, 이때 임화수는 곽영주를 형님으로 모십니다.

 

③ 실제로는 임화수(1921년 1월 10일)가 곽영주(1924년 1월 10일생)보다 3살 더 많습니다.

 

처세술에 밝은 임화수는 자신을 낮춰 곽영주의 마음을 얻게 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후 둘은 의형제와도 같은 사이가 되어, 온갖 특혜와 비리를 만드는데 공조합니다. 물론 둘은 훗날 이 같은 관계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야인시대 속 임화수와 곽영주 조우 장면 사진
야인시대 속 임화수와 곽영주 조우 장면

 

한편, 드라마 무풍지대와 야인시대에서는 그가 <눈물의 곡절>이라는 인물을 항상 괴롭히고, 심지어는 구타까지 하는 폭력적인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께서는 조금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④ <임화수>가 <눈물의 곡절>을 괴롭힌 것은 사실입니다. 

 

눈물의 곡절(본명: 차민섭)은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유학을 한 엘리트로 동대문 사단에서 가장 학력이 높았습니다. 임화수의 비서로 그에게 수많은 폭언과 구타를 당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그를 배신하지 않고 그의 시신을 마지막까지 수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임화수는 자신이 문교부 장관이 되었다면 그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사형 직전 임화수를 면회하는 눈물의 곡절 장면
사형 직전 임화수를 면회하는 눈물의 곡절(드라마 야인시대)

 

3.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다 

 

⑤ 그는 자신이 따르던 <곽영주> 등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고 1961년 12월 21일 만 40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져 있듯이, 동대문 사단은 1960년 4월 18일 자유당의 독재를 막으려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시위 진압 주동자 중에는 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부상을 입고 사망자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 그가 사형선고를 받게 된 주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이정재가 시킨 일이라며, 자신의 죄를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그가 한국 영화사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하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배우들에게 폭력을 일삼았으며, 자신의 권력 쟁취를 위한 자리에 여배우들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만 살기 위해 이정재에게 죄를 덮어씌우려고 했던 모습은 극 속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비열했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정재 등 정치깡패 서울시내 행진

 

이상으로 오늘은 실존했던 인물 <임화수>에 대한 주요 사실을 BEST 5로 정리해 드렸습니다.

소개해 드린 내용 외에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바로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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